4[단독]“중대법 CEO 처벌해도 사고감소 보장 안돼”
서양사 교수가 지난 여름방학 동안에 좋은 독서를 한 학생이 있으면 잠시 시간을 할애해 줄 테니까 누구 없느냐고 제안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모두 임진왜란 당시에 포로로 끌려가 일본의 도자기 산업을 일으킴으로써 이름을 남길 수 있었다.청화백자 자체가 푸른색을 좋아하는 아랍인의 취향에 맞춰 수출용으로 개발한 것이었다.
외부 세계로부터 철저하게 차단되어 있고.오늘날 사쓰마 도자기가 최고 명성을 누리게 된 것은 바로 이 도공들 덕분이다.게다가 임진왜란 당시 많은 도공이 일본으로 끌려갔다.
리움미술관 ‘조선의 백자.조선백자의 전위성을 일찍이 발견한 사람은 현대미술의 거장 김환기였는데.
조선은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백자를 생산할 수 있었으면서도 수출할 생각을 하지 못했고 도공을 대우해 이름을 남겨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제 유교와 결부된 조선백자를 볼 때 그 예술성에 감탄하면서도 그 그림자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특히 백파선이 없었다면 조선에 여성 도공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으리라.
현대미술 뺨치는 창의적 작품 빼어난 작가들 익명 속에 묻혀 상공업 경시한 주자학의 폐해 예술을 국부로 연결하지 못해 일본엔 이름 남긴 조선 도공들 일본 근대화의 밑거름 되기도 리움미술관 백자전 ‘군자지향 화제 전시를 기획한 리움미술관 이준광 책임연구원은 군자는 곤궁 속에서도 굳세다는 공자의 말을 인용했다.일본이 조선을 끔찍하게 파괴한 전쟁이 끝났을 때.
조선 도공들은 뛰어난 기술과 예술성을 지니고도 익명의 존재로 머물렀다.추상화된 산(山) 모습을 꽤 닮은 문양이 있다.